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에는 하이라이트를 치면서 읽는데, 김연수 작가님의 '지지 않는다는 말'은 무려 70개 정도의 밑줄을 치게 되었다. 😅 전부 다 쓸 수는 없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을 공유해 본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하지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세계를 산다는 건 쏜살같이 사라지는 세계에서 산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나중에는 나 역시 경전의 말씀을 인정하게 될 테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세계에 살고 싶지 않다. 이별할 것이 겁이나서 아예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다거나, 이 세계는 고통에 가득 차 있으니 미리미리 그런 고통을 피해서 살아 가고 싶은 생각은, 아직은 없다. 그보다 나는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세계를 원한다. 더 좋은 존재여서 나를 감동시키거나, 더 나쁜 존재여서 내게 분노를 일으키게 만다는 것들로 가득한 세계가 아직은 내가 원하는 세계다. 왜냐하면 그런 세계는 나의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서 희로애락의 고통을 피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이 지복의 삶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건 복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감각이 잠든 삶이리라. 감각이 잠들면 우린 자신이 지금 숨을 쉬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알지 못한다.
...
팃낙한 스님이 전하는 베트남의 속담은 다음과 같다. "공동체를 떠난 수행자는 파괴될 것이다. 산을 떠난 호랑이가 인간에게 잡히듯이." 내 식대로 고치자면,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행복하고 괴로워하라.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필요했던 조언이었고, 특히 내 성격을 아는 선생님께서 나를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작은 것에 쉽게 행복해지고 또 슬퍼지기도 한다. 그런 성격을 좀 고치고 단단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라고 종종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깨어 있는 감각을 가지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삶은 어쩌면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작가님의 말처럼,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느끼는 사람은 감각이 잠든 삶을 사는 노인이 될 것이다.
나의 감정,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순간이었다.
끈기가 없는, 참으로 쿨한 귀
유행가를 나는 좋아한다. 영원과는 거리가 먼, 곧 잊힐 노래라서. 그럼에도 바로 그 이유로 영원히 기억에 남으므로.
유행가의 교훈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텐데, 그때는 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
최고의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이리라. 물론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건 매 순간 바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산다면, 옛날에 좋아하던 유행가를 들을 때처럼 특정한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들을 많이 할 것이다.
결국 최고의 삶이란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뜻이다.
특히 이 문장이 주는 감동이 있어서 몇 번 읽어보았다.
유행가를 나는 좋아한다. 영원과는 거리가 먼, 곧 잊힐 노래라서. 그럼에도 바로 그 이유로 영원히 기억에 남으므로.
유행가처럼 짧고 사소해 보여도, 그때만의 감정이 진하게 남는 순간들이 삶을 이루는 조각인 것 같다.
하늘을 힐끔 쳐다보는 것만으로
살아오면서 나도 이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여러 번 상처를 받았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을 한 번만 경험한다.
...
모든 것은 변화하고, 모든 일은 지나간다는 그 자명한 사실 덕분에. 나무와 새들은 그 사실로 이뤄진 나날을 그저 겪을 뿐이다.
...
몰아치는 바람 앞에서도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꼿꼿하게 서 있다면, 그건 마음이 병든 나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 순간 달라지는 세계에서는 우리 역시 변할 때 가장 건강하다. 단단할 때가 아니라 여릴 때.
...
나는 매 순간 변하는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그날의 날씨를 최대한 즐기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때로 즐거운 마음으로 조간신문을 펼쳤다가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마음이 약해졌을 때다.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장 건강한 몸은 금방 지치는 몸이다. 자신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보통 '일관성'을 긍정적인 성격으로 보지만, 여기서는 그날의 기쁨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가장 건강한 마음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결국 진짜 건강하다는 것은 강한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다는 것 같다. 고통에도 기쁨에도, 타인의 말에도 반응하는 것.
그리고 그 연약함이 우리에게 서로를 연결시켜 주니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는 이 여름의 전부
휴식이란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와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나를 둘러싼 반경 10미터 정도,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구나.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몇 명, 혹은 좋아하는 물건들 몇 개. 물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세계가 그렇게 넓을 이유도, 또 할 일이 그렇게 많을 까닭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잘 쉰 셈이다.
얼마 전에 ㅈㅇ언니를 만나서 우리는 왜 종종 여행을 가서도 정말 쉰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깊은 공감이 갔다 😂
진정한 휴식이란 멀리 떠나거나 많은 일을 쉬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주변과 나 자신을 느끼며, 내 삶의 작지만 소중한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는 시간인 것 같다.
도시에 공급하는 고독의 가격을 낮춰 주기를
혼자서 별을 바라본다는 건, 단순히 별을 관찰하는 일과는 다르다. 그건 고독을 인정하는 일, 혹은 자기 안의 어둠을 직시하는 일이다. 밝은 신도시의 밤에는 내가 고독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제 고독은 부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감정이 됐다.
...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도시에서는 이런 감정을 절대로 느끼지 못한다. 도시에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
도시에는 나보다 늦게 태어나서는 나보다 일찍 사라지는 것들로 가득하다. 도시에서 나는 연민을 느낀다. 이 연민은 사막에서 별들을 바라보며 내가 느낀 고독에 비하자면, 얼마나 저렴한 감정인지 모른다. 이 저렴한 연민은 나를 자만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마저도 그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리라. 이 모든게 환한 밤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별빛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독이 너무나 비싼 감정이 됐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고독의 가격이 낮아지기를 바란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챕터다. 몇 번씩 읽은 것 같다.
도시에 공급하는 고독의 가격을 낮춰 주기를
독일은 밤이 참 어둡다. 한국에서는 밤에도 어디든 불이 켜져 있어서 밝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서 밤에 강아지 산책을 데리고 나가는 게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그런데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밤하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Luitpoldpark의 중앙에 가면 넓은 밤하늘과 별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때 별들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을 당시에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이 글을 읽으며 '고독'이었구나 싶었다. 책을 읽을 때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이렇게 종종 나에게 스쳐 지나갔던 감정이 다시 정확한 어휘로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볼 때인 것 같다.
우리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말하고 나면 진짜 그렇게 믿어 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먼저 입과 귀로 취한다. 그 다음에는 마음이 취하게 된다.
...
누구나 한 번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왜 여기있는지 말해야만 할 때가 올 것이다. 요령은 간단하다. 지금은 호시절이고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이며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게 만나게 됐다. 의심하지 말자.
한 번 더 읽기를 바라며 쓰는 글
한 3번씩은 읽은 챕터. ㅋㅋㅋㅋ 이 책을 읽었으면 공감할 것이다. 처음으로 거꾸로 읽어나가야 하는 글을 읽었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왜 작가님이 한번 더 읽기를 바라며 거꾸로 작성했는지 큰 공감이 갔다.
이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리라.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다면 뭘 생각하고, 뭘 할까? 그건 정말이지, 내 자원을 모두 쏟을 가치도 없는 것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제 100살의 눈으로 그 고통을, 고독을, 절망을 노려보자. 해서 지금 내가 여기 이곳에 떨어졌다고. 오래도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라에몽이 나타나서 지금의 나이로 되돌려주겠다고 말했다고 치자.
이것이 지금 네가 읽고 싶은 책이냐?
어쨋든 질문만이, 오직 근본적인 질문만이 영혼을 깨울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에게 한계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 누구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영혼이 깃든 대답을 하듯이 말이다. 그 반대의 세계는 무제한을 장려하는 사회다. 무한한 소비, 무한한 정보, 무한한 인맥...
무한이란 아마도 죽고 난 뒤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한한 소비와 정보와 인맥에 둘러싸인 사람이란 아무리 뭐라고 물어도 대답이 없는 사람, 그러니까 지금 죽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삶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무한함'을 좇기 시작하면 그 질문 자체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진짜 살아있는 사람은, 무한의 환상 속에서 벗어나 한계를 자각하고 질문하는 사람일 것이다.
혼자에겐 기억, 둘에겐 추억
그때는 인간은 모두 위대한 혼자이니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구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부터가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구할 마음을 먹지 않을테니 남들도 내게 위로를 요구하지 말라고 사전에 먼저 질러 보는 심사였을지도 모른다.
...
아하, 사실상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나 자신뿐이라고 여기는 얼치기 염세주의자에게 글쓰기는 그런 식의 효용이 있었던 것이다.
...
그때 나는 깨달았다.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아마 나도 혼자 견디는 일을 위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물렁물렁한 고무 마음의 지옥훈련
왜 제목이 고문일까? 고문하는 사람들은 육신을 가진자들이라면 결국 변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은 바뀌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남는 찌꺼기 같은 게 있다. 그 찌꺼기 같은 게 고통으로 변심한 자들을 구원한다. 구원은 굴하지 않는 강철 같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게 아니다. 인간들이 모두 변하고 난 뒤에도 찌꺼기처럼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얼룩 같은 게 우리를 구원한다. 그걸 일러 영혼이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더 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나기를, 그리고 그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말하자면 예측할 수 없이 변하는 날씨처럼, 늘 살아서 뛰어다니는 짐승들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처럼. 그처럼 단 한순간도 내가 아는 나로 살아가지 않기를, 그러니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나를 사로잡는 것들이 있으면 그 언제라도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바람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를 정해진 틀 안에 가두기 않고, 변화하는 삶과 세상에 유연하게 내맡길 수 있기를.
어떠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지 않고, 나를 갱신하고, 필요할 땐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기를.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그렇다면 젖지 않는 방법은, 쓰러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나 자신이 너무나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스스로 속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겁내지 않는 상태.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는 상태.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대단히 가슴이 떨린다. 왜냐하면 거기까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했는데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정말 안 되는 일이니까. 그제야 나는 용기란 한없이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게 바로 세상의 모든 영웅들이 한 일이다.
...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바로 챔피언'이란 말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마다 붙어 있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 문장을 볼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상투적인 문장을 이해하려면 대단히 비상투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고 된다면, 나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친구나 애인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진실한 사람을 곁에 두려고 한다.
진실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
다만, 진실함과 무례함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떤 말이든 함부로 뱉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오히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안함을 느꼈다. 그런 무례함은 내가 생각하는 진실함과는 거리가 멀다. 진실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렇기에 타인을 향해서도 신중하다.
뛰지 않는 가슴들, 모두 유죄
이 삶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지, 만약에 있다면 지금 나는 무슨 일을 해야만 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에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면 먼 훗날 큰 보답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부록같은 것이다. 진짜 최선을 다하면 그 순간 자신에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하는 행동과 말과 일을 통해서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한없이 투명해진다는 것. 그 누구 앞에서도 어깨를 움츠리지 않는다는 것. 내게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가져다준다고 해도 그처럼 살아갈 수 있었던 순간들과 바꿀 생각은 하나도 없다.
나는 이 부분을 이렇게 이해했다. 어쩌면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은 진정성이 부족한 삶이다.
매 순간마다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살자. 그렇게 사는 삶이야말로 자신에게 떳떳하고 진정한 삶이니.
공감가는 구절이 많아서 참 인상 깊게 읽은 책이다.
나중에 한국에 가면 종이책으로도 구매해서 소장하고 싶다. 🤍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볼까 한다.
'리뷰 >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파란, 나폴리 - 정대건] 누구나 저마다의 나폴리를 찾게 되기를 (1) | 2025.06.30 |
---|---|
2025년 독서 목록 (업데이트 중) (1) | 2025.06.21 |
[스몰플레저 - 클레어챔버스] Small pleasures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결말 포함, 스포 o) (0) | 2025.02.11 |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 이슬아, 남궁인]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희귀하다 (0) | 2025.02.05 |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 김소영] 책이 책을 부른다: 읽고 싶은 책 목록 (2) | 2025.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