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강제부팅을 당했다.
그 원인은 병원에서도 찾지 못했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ㅈㅇ언니 말처럼 하늘에서 쉬라고 그런 건가 보다 하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입원해 있으면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건 회사였다.
독일에서는 병가를 내도 원인을 묻지 않는다. 그냥 아프면 아픈 거다. 그래서 다들 부담 없이 병가를 내지만, 얼마 전 패기 넘치게 일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언제 끝날지 모를 회복을 기다리며 병가를 내는 것이 답답했다.
병원에서 진통제 덕분에 정신이 조금 돌아왔을 때,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회사 동료들에게 연락을 남겼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이 걱정해 주며 연락을 줬다. 다들 병원에 방문하겠다고 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개인 연락처를 넘겨주며 언제든 연락하라고도 했다.
아마도 뮌헨이 아닌 타지에서 생긴 일이라 내가 완전히 혼자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료들이 내 연락처를 공유했는지 WhatsApp으로도 연락이 왔다. 그중 한 명에게 지역과 병원 이름만 말했는데… 오 마이 갓. 진짜 병원으로 찾아왔다. 어떻게 찾았는지 물었더니 이 근처에 병원은 이거 하나밖에 없다고 하더라..ㅋㅋㅋ 몰랐다…
그는 Go Asia에서 먹을 것들을 잔뜩 사 왔다. 초코파이, 알새우칩 등 전부 한국 과자였다. ㅋㅋㅋㅋ 흐허… 너무나 고마웠다. 그는 많은 팀원이 방문하길 원한다고 전하며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다. 사실 하루 중 컨디션이 좋은 시간이 많지 않고, 꾀죄죄한 몰골에 얇디얇은 병원 가운 하나만 입고 있어서 부끄럽기도 해서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나도 세균성 뇌수막염은 처음이라 병가가 얼마나 길어질지 몰랐다. 재활까지 고려해 6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매니저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 말을 던져 놓고도 마음이 불편해서 며칠 동안 Outlook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답장이 와 있었다.
Take all your time you need for recovery and don't worry at all about the work.
😭😭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아직도 내가 맡아오던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되고 있을지 ,, 데드라인은 이미 끝났을텐데 누가 어떻게 끝냈을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지만.. 이런 걱정들은 나의 뇌압을 올리니 당분간 멈추려 한다. 🧘♀️
퇴원하는 날이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입원한 2주 동안 너무나도 많은 분께 감사했다.
-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으로 나를 살려주신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들
- 보호자 없는 나를 정성껏 돌봐주신 간호사분들
- 병실 안에 혼자 누워있을 때 말동무가 되어 주고 함께 걸어주고 재밌는 농담도 해주신 재활치료사분들
- 밤마다 호출 버튼을 눌러도 언제나 달려와 도와주신 요양보호사분들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찾아와 도움을 주셨던 Dr. L께 너무 감사하다.
내 담당 의사도 아니었는데 직접 찾아와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봐 주시고, 언제든 말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급하게 칫솔과 치약이 필요해서 부탁드렸는데, 센스 있게 머리빗까지 사다 주셨다. 그다음엔 병원 음식이 별로라는 걸 알고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보셨고, 과일과 초콜릿 등을 사다 주셨다.
그 외에도 야간 당직을 서는 날에도 피곤하실 텐데 아침 퇴근 전에 일부러 방문해서 안부를 물어봐 주셨다.
사실 병원에 의사가 부족해서 내가 궁금한 것들, 걱정되는 것들에 대한 답을 듣기가 어려웠다. 간호사분들께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해도, 그들이 생각해도 병원에 의사가 너무 부족하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예를 들어 주말에는 병원 전체에 의사는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단 한 명뿐이라고 했다.
그런 와중에 직접 찾아와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었다. 나중에 회복하면 병원에 찾아가 꼭 감사함을 표현해야지!! 💗
퇴원 후 뮌헨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한국에서 날아왔다.
그때부터 사육이 시작되었다.
하루 세끼를 이렇게나 제대로 챙겨 먹은 게 처음이다.
살이 5~6kg 빠져서 눈이 퀭할 정도였으니, 이 정도는 먹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게 반도 안 된다…
엄마가 오는게 맞을까 여러 번 고민했는데, 안 왔으면 나 혼자 어떻게 챙겨 먹고살았을까 싶다.
그런데 건강한 상태여도 이 정도로 매 끼니를 챙겨 먹진 못한다.
지금 몸은 뼈만 남았는데… 배만 볼록 나왔다. 🤰
그 외에도, 엄마가 엠마 산책도 도와주고, 병원에도 같이 가주고, 집안일도 도와주고 있다.
역시, 혼자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
퇴원 후 집에서 끙끙 앓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벨이 울렸다. 아마존인가 싶어 문을 열었는데.. 이게 웬걸? 꽃이 배달되었다. 배달원에게 이거 우리 집으로 배달된 거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확인해 보니 정말 내 앞으로 꽃이 배달되었다.
편지를 열어 확인해 보니 회사 팀에서 보내준 것이었다!
😭😭😭😭😭😭😭
너무 아름다운 꽃다발이었다.
꽃보다도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 하필 또 꽃이 월급날에 도착해서…ㅎ 출근도 안 하고 월급 받는 나의 마음도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회복해서 돌아가면 더 진가를 발휘하리라..❤️🔥
사실 이 모든 사건이 출근을 하면서 일어났는데, 다시 일을 시작할 생각을 하니, 응급실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이번에 몇 주(사실 몇 달..)를 쉬면서 '일' 자체에 좀 회의감이 들던 찰나에.. 이런 꽃다발을 받으니..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금은 몸이 아파서 모든 것에 의욕이 없지만, 몸이 회복되면 다시 열정이 돌아올것 같다.. ❤️🔥
테판이가 병원에 나를 방문해 주면서 누군가 엠마를 돌봐주어야 했다.
K가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이웃이고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인데 엠마를 잘 돌봐주시고 가끔은 테판이도 돌봐주신 것 같다 ㅋㅋ
사실 K는 나이도 많으신데 영어도 잘하고, 굉장히 오픈마인드에 따뜻한 사람이다.
퇴원한 지금까지도 일주일에 한 번씩 안부 연락이 온다 😊
역시 그녀는 내가 병원에서 엠마를 보고 싶어 할 것을 알았고 자주 엠마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힘이 나는 메시지도 함께.
병실에 갇혀서 너무 괴로워하고 있을 때 이 메시지를 받았다.
Look outside: the sun is shining 😄
그동안 창밖을 굳이 보지 않았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해가 환하게 떠있었다.
K가 나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이 여기까지 닿았고 또 눈물이 났다. 정말 올해 날 눈물은 이제 다 흘린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병실에서 홀로 보내며 고통을 이겨냈지만, 이들 덕분에 외로웠던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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